* <이는 스피노자로부터 비롯한 개념이지만, 현행 용법은 들뢰즈의 창조적 변용으로 간주하는 것이 맞다.>
- 정서(情緖, emotion): 개인적이며 정태적인 뉘앙스 때문에 부적절
- 감정(感情, sentiment): 흥분 상태의 부정적 정념과도 혼동될 수 있어 부적절
- 감응(感應, resonance or correspondence): 축자적으로는 부합하지만 동양적 신비의 연상작용 때문에 다소 부적절.(무엇보다 스피노자의 원 개념이 갖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들을 생략하고 단일화의 위험이 따른다.[이에 대해서는 보충설명])
- 정동(情動, affect): 원래의 단어(affect)가 지닌 역동적 측면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으며, 그것이 내포한 다양한 층위들을 두루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적절
** 감응(또는 감통[感通])은 <<주역>>을 위시한 명백히 동양적 사유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의미상 소통에 기반한 ‘공명’(resonance)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것은 인간과 인간(자연)만이 아닌 자연 간의 교감까지를 포함한, 즉 인간주의를 넘어선 것이다.
*** 용어의 개념적 정확성·엄밀성과 함께 그 의미의 개방적 포용성, 경험적 현실에 대한 설명능력의 실효성 및 확장 가능성, 번역어를 둘러싼 그간의 진행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재 지속가능한 유력한 용어는 ‘감응’과 ‘정동’ 두 가지로 압축됐다고 하겠다.
이는 현존재로서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리 주체가 초월의 형이상학적 욕망에 의해 인도될지라도, 인간은 존재를 지속하고 자기를 보존하려는 욕망, 코나투스(conatus)의 강력한 힘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고리스(egoless)'는 하나의 지향성으로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일뿐, 실제로 주체의 흔적이 남지 않는 순수한 에고리스라는 사태는 어떤 순간에서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는 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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