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몌별(袂別)              

                

    

  누구나 언젠가는 떠나게 마련이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이든 그동안 머물고 있던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이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내 잘 떠날 줄 알아야 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라고 읊조린 시인의 마음자리도 아마 비슷했을 것 같다. 틀림없이 떠나야 함에도 망설이고 주저한다면 감정의 잔상들로 미혹됨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학보사 주간교수로서 지난 4(지령, 191~222)을 지내왔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내려놓아야 할 때라고 여긴다. 보직교수의 임면권이 당자에게 있지 않은 만큼 후일을 기약할 수는 없겠으나, 나는 스스로 이만 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섭섭한 정리가 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가야할 때가 아니겠는가. 본교에 부임한 지 1년 만인 2013년 봄, 참으로 과분한 임무를 나는 떠맡았다. 사실 나는 대학시절 이후 언론관련 기관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이었다. 단 한 줄의 기사도 써보기는커녕 언론의 역할과 소명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본 바가 없던 터였다. 그래서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컸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교정에 벚꽃이 흩뿌릴 무렵, 무슨 심사였는지 학보사 주간직을 덜컥 받아들었던 것이다. 매달 학생들의 원고에 붉은 글씨로 교정하고 되돌려주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지만 그들의 젊은 시선과 선한 마음결을 마주하는 것이 내내 기뻤다. 그리고 조금씩 책임 있는 필자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못내 대견스러웠다. 그 과정 속에서 편집장을 맡았던 두 사람의 얼굴이 내 마음 속에 또렷이 아로새겨져 있다. 정론직필이라는 언론의 소임을 수행하면서 <<한국체육대학보>>가 미력이나마 학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 모두의 노력과 헌신 덕택이다. 이 자리를 빌려 심중의 말을 꼭 전해야겠다. “, 고맙습니다.” 그간 나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근간으로 하여 크게 두 가지 원칙만을 생각했다. 학생기자들의 자율성을 말 그대로 충분히 존중해준다. 그리고 그 자율성을 침해하는 어떠한 견해에도 학보사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한다. 다행히도 그러한 비개입적 관여의 원칙은 지금껏 잘 지켜졌던 듯싶다. 아울러 이상의 소박한 원칙들이 학보사의 전통으로서 연면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여 달마다 진행됐던 독서모임의 열기 속에 무르익던 지적 향기와, 한여름 밤 시를 함께 읊조리던 동해바다의 푸른 별과, 연극이 끝난 후에 살갗을 파고들던 겨울거리의 매운 바람을, 또한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이제 서늘한 가슴 아래 고이 접어두어야 하겠다.

 

* 몌별(袂別): 소매를 잡고 작별한다는 뜻으로, 섭섭히 헤어지는 것.(222호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