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한글 맞춤법은 1988년 1월 19일의 문교부 고시 제88-1호에 따라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한글 맞춤법>의 차례를 보면 ‘일러두기, 제1장 총칙, 제2장 자모, 제3장 소리에 관한 것, 제4장 형태에 관한 것, 제5장 띄어쓰기, 제6장 그 밖의 것, 부록 문장 부호’의 순으로 각각 해당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중 전체를 거느리어 포괄하는 규칙으로서 총칙(總則)은 3개의 항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제3항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 제2·3항은 관련 내용에 대한 기본사항을 밝히고 있어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다만 제1항의 규정은 여러 가지로 곱씹어볼 만한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한글 맞춤법은 지방의 사투리가 아니라 서울말인 표준어를 기반으로 한다. 서울말 역시 여러 지역의 말의 하나인 방언(方言)에 속하는 것이지만 표준어로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즉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은 표준어의 사전적 정의로서 통용된다. 보다 복잡한 문제는 그 다음의 서술 내용에 있다. 다시 말해 ‘소리대로 적는다’는 원칙과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원칙은 상호모순 규정으로서 배치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소리대로 적으면 어법에 맞도록 할 수 없으며, 어법에 맞도록 하면 또한 소리대로 적을 수가 없다. 쉬운 예로서 ‘(꽃잎) : [꼰닙]’의 대비를 볼 수 있다. 우선 소리대로 적는다는 것은 한글이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내는 표음문자(表音文字)이자, 음소 단위의 음을 표기하는 음소문자(音素文字)인 점에 기인한다. 따라서 자음과 모음의 결합형식에 의하여 표준어를 발음 형태대로 표기하는 것이 근본원칙이다. 이어지는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형태음소적 원리에 입각하여 기본형을 고정하여 표기에 반영한다는 의미로, 앞선 음소적 원리에 따른 근본원칙에 부가된 일종의 조건이다. 따라서 두 원칙 중 선행하며 우선하는 것은 엄연히도 소리대로 적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충돌가능성이 큰 이율배반적 원리를 함께 담았던 국어학자들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언중(言衆)의 실제 언어생활을 맞춤법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조치이다. 추상적 관념체계로서 맞춤법은 생활인들의 살아있는 말과 괴리되기 십상이다. 아울러 맞춤법은 불변의 규율로서 동시대인들의 구체적 삶과 언어 위에 군림하는 것도 아니다. 맞춤법은 언어생활의 혼란을 막기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규칙들로서, 사람들의 실제 언어생활로부터 다만 귀납된 것일 따름이다. 고쳐 말해 대다수 언중의 말과 언어적 관습이 바뀌면 맞춤법 역시 그에 맞춰 바뀌고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언어의 역사성이라 부른다. 가령 과거 비표준어였던 ‘짜장면’이 ‘자장면’과 함께 표준어로 인정된 사례는 그 유력한 증거일 것이다. 하여 사람들의 말이 바뀌면 맞춤법도 바뀐다.
한편 제2항과 관련하여 우리말의 띄어쓰기는 왜 이리 복잡할까라는 의문을 한번쯤은 품어봤을 법하다. 하지만 띄어쓰기에 담긴 기본적인 생각에 유념한다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띄어쓰기는 ‘왜’ 하는 것일까? 띄어쓰기에는 띄어 쓰는 말과 단어를 그 위상에 걸맞게 존중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단어는 독립적으로 쓰이는 말의 단위이다. 즉 독립적이며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은 띄어 쓴다. 반면에 조사나 어미처럼 독립적으로 쓸 수 없는 말들은 앞말에 붙여 쓰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장 내에 선택한 단어의 성격에 좀 더 유의한다면 띄어쓰기의 문제는 대개는 해결이 된다.
한글 맞춤법을 위시한 국어 어문규정은 내용이 결코 녹록치 않은데다 다양한 예외규정까지 포함하면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평소 자신의 일상 속에서 우리말에 대한 감각을 예리하고 민감하게 벼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그리고 적확한 표현법 역시 자신만의 언어적 직관에 의존하는 태도로부터 자연스레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