桃花源記_陶淵明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 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捨船從口入.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朗.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竝怡然自樂.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 自云, “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 來此絶境,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 “今是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一爲具言所聞, 皆歎惋.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志之.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志, 遂迷不復得路. 南陽劉子驥, 高尙士也. 聞之, 欣然規往. 未果, 尋病終. 後遂無問津者.

(<<陶淵明集>>, 卷六)
 

 

  진나라 태원 년간(A.D. 377~397년), 무릉에 고기를 잡는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내를 따라 가다가 어디쯤인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배는 어느새 복숭아 꽃이 강 양켠으로 흐드러진 곳을 지나고 있었다. 수백보의 꽤 긴 거리를 그렇게 배는 흘러갔는데, 잡목은 보이지 않고 향기 드높은 꽃들이 선연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으며 꽃잎들은 분분히 날리며 떨어지고 있어 어부는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

  앞이 궁금하여 계속 나아가니 숲이 끝나는 곳에 수원이 있었고 그곳에 산이 하나 막아섰다.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구멍이 아주 좁아 사람 하나 정도 들어갈 만하더니, 몇 십 발자국 나서자 시야가 훤하게 트여왔다.

  너른 들판에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름진 전답이며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나 대나무 등속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의 (진시황 이전) 토지구획 그대로 개와 닭 소리가 한가로이 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가며 경작하고 있었는데 남녀가 입은 옷이 모두 이국풍이었다.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한결같이 기쁨과 즐거움에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어부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니 집으로 초대해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음식을 베풀어 주었다. 낯선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아 모두들 찾아와 이것저것 물었다. 자기네들은 옛적 선조들이 진(秦) 통일기의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에 왔는데, 그 이후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바람에 외부와 격절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냐고 묻기도 했다. 진 이후 한(漢)이 선 것도, 한(漢) 이후 위진(魏晉)시대가 온 것도 알지 못했다. 어부가 아는 대로 일일이 대꾸해주자 모두들 놀라며 탄식했다. 사람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그를 집으로 초대해 술과 음식을 내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머문 후, 어부는 이제 가봐야 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가운데 누군가가 “바깥 세상에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부는 동굴을 나서서 배에 올라, 방향을 잡아 나가면서 곳곳에 표식을 해 두었다. 고을로 돌아와 태수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더니, 태수는 사람을 보내 오던 길을 되짚어 표식을 더듬어 나가게 했으나 다시 그 길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남양의 유자기는 뜻이 높은 은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곳을 찾아가려 했으나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